요르단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17년이 지났다. 이곳에서 일상적으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사말과 내가 필요한 정도의 말만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만큼 아랍어는 쉽지 않은 언어다. 그러나 그 높은 언어적 장벽만큼이나, 아랍어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의 가치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아직 중동을 낯설고 먼 나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동은 분명 새로운 시장이고, 기회의 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 관련 뉴스나 정책 보고서를 보면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바로 "전문 인력 부족" 그리고 "아랍어 가능자 부족"이다. 이 지역에 대한 책조차도 국내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현실에서,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이해하는 인재는 거의 전무하다.
아랍어는 구조적으로도 도전적인 언어다. 말하는 사람과 말하려는 대상에 따라 단어의 형태가 달라지고, 문어체와 구어체의 차이도 크다. 표준 아랍어를 배우더라도, 실제 거리에서 쓰이는 아랍어는 지역마다 방언 차가 심하다. 요르단 내에서도 지방마다 다른 아랍어가 존재하고, 특히 베두인들의 언어는 현지인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아랍어는 28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진 문자 언어로, 단어의 위치(어두, 어중, 어말)에 따라 글자 형태가 달라진다. 처음 이 언어를 배울 때 가장 놀라웠던 점은, 하나의 알파벳이 ‘세 번 변신’한다는 사실이었다. 더불어 한국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발음들도 많아, 작은 발음 실수로 인해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기도 한다.
아랍어를 쓰는 세계는 단순히 언어만 다른 것이 아니다. 문화, 예술, 종교,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르다. 이슬람 문화는 우상 숭배를 금지하면서, 그림이나 조각 같은 시각 예술보다는 서예와 건축이 발달했다. 알람브라 궁전(스페인)이나 타지마할(인도) 같은 이슬람 건축물에는 아랍어 장식이 가득하고, 이러한 시각적 언어는 신앙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도 아랍어는 신성한 언어로 간주되었다. 코란은 무함마드가 사용한 언어이며, 따라서 인쇄가 아닌 ‘필사’로만 보급되었다. 이는 정보 전파 속도에 제약을 줬고, 인쇄술을 통해 성경이 대중화된 기독교와는 다른 전개를 가져왔다. 만약 코란이 더 일찍 대량 인쇄되었더라면, 이슬람의 전파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었을지도 모른다.
현지 생활을 하다 보니, 아랍어의 실용성도 새삼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나는 너의 가방을 원한다”는 말을 아랍어로는 단 두 단어, biddi santak 으로 표현할 수 있다. 문장이 짧아지는 만큼, 키패드 지원이 원활하지 않은 휴대폰에서도 문자 송수신이 상대적으로 편리하다.
물론, 아랍어는 하루아침에 익힐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특히 쓰기 아랍어는 중간에 포기하고 지금은 구어체만 사용하는 나로서는, 이 언어가 얼마나 끈기와 시간을 요구하는지 실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 현지 기업인들 다수는 아랍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기회가 아랍어 능통자를 기다리고 있다. 아랍어는 분명 ‘진입 장벽이 높은 언어’다. 그러나 그 벽을 넘는 순간, 당신은 한국에서 몇 % 되지 않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요르단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르단] IBM, 그리고 인샤알라가 알려준 여유 (2) | 2025.04.18 |
---|---|
[요르단] “키스 좀 주세요?” – 언어의 유쾌한 착각 (0) | 2025.04.18 |
[요르단] 신성한 달, 라마단 – 요르단에서의 경험 (0) | 2025.04.17 |
[요르단] 예배하는 사람들 – 요르단에서 만난 신실한 삶 (1) | 2025.04.17 |
[요르단] 베두인의 이동, 삶을 따라 걷다 (0) | 2025.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