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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요르단의 주말은 금요일, 토요일

요르단에 와서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시간’이었다. 일주일의 시작과 끝을 정의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했던 토요일과 일요일의 주말 개념이, 이곳에서는 금요일과 토요일이었다. 금요일은 이슬람 예배일이고, 토요일은 그 연장선. 그리고 일요일이면 다시 일상이 시작된다. 처음엔 이 변화가 참 낯설었다. 내가 살아온 삶 속에서 주말은 언제나 토요일과 일요일이었다. 주말이 되면 마음이 설레고, 금요일 오후부터 작은 들뜸이 피어오르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 설렘이 목요일 오후부터 시작된다. 어색하고 이상했지만, 이 낯선 리듬에도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다. 요르단의 주말은 사실상 목요일 오후부터 시작된다. 대부분의 관공서나 공공기관은 목요일 오전까지만 업무를 보고, 오후가 되면 하나둘 문..

요르단 생활 2025.04.24

[요르단] 한 장의 종이 안에 담긴 소식

우리는 참 빠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손안의 작은 기계 하나로, 멀리 떨어진 이의 안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손쉽게 전할 수 있는 세상. 메시지 하나면 마음이 닿고, 사진 한 장이면 순간이 공유된다. 그런 시대에 나는, 종이 한 장에 마음을 담아 전하는 엽서를 생각한다.한국에 있을 땐 엽서를 써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엽서를 보내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아마도 엽서의 묘미를 잘 몰랐던 거다.그러다 여행을 하면서, 엽서를 쓰는 일이 조용한 즐거움이 되었다.누군가에게 답장을 기대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내가 머문 낯선 나라의 한 조각을,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었을 뿐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도착한 엽서들을 모으며, 문득 깨달았다. 이곳, 요르단은 생각보다 우편 시..

요르단 생활 2025.04.23

[요르단] 요르단에서 마주한 한국 영화, 그리고 문화의 대화

매년 요르단에서는 주 요르단 한국 대사관 주최로 한국 필름 페스티벌이 열린다. 한국을 알리기 위한 행사 중 하나로, 매년 4편 정도의 한국 영화가 상영되며 현지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함께 관람하는 장이 된다. 모든 영화는 영어와 아랍어 자막이 함께 제공되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관람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아랍 친구들과 함께 관람하며 자연스레 영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 중 하나는 영화 식객을 보고 난 후였다. 해산물을 주제로 한 요리 장면을 본 아랍 친구는 군침을 삼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다양한 해산물 요리는 정말 처음 봤어.” 대부분이 건조한 사막지대인 요르단에서는 해산물이 귀한 고급 음식으로 ..

요르단 생활 2025.04.22

[요르단] 붉은 사막 위에 내린 하얀 꽃

한국에 몇십 년 만에 내린 폭설로, 올해는 최근 몇 년 중 가장 많은 눈이 내린 해로 기억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했고, 그 여파는 한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모래로 뒤덮인 황량한 요르단에 살다 보니, 문득 그 하얀 눈이 그리워졌다. 평소처럼 일어나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향했다. 문득 창밖을 바라본 순간, 숨이 멎는 듯한 놀라움이 밀려왔다.전날까지만 해도 누런빛으로 펼쳐졌던 적막한 땅들이, 하룻밤 새 모두 사라진 듯 보였다.온 세상이 하얀 꽃잎처럼 내려앉은 눈으로 뒤덮여, 그야말로 눈부신 별천지가 되어 있었다.건물과 나무들의 위치는 그대로였지만, 색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색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다는..

요르단 생활 2025.04.20

[요르단] 수상한 이웃들

내가 예전에 살았던 타필라는 요르단 남부의 작은 도시다. 수도 암만에서 승용차로는 세 시간이면 닿을 거리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사람들의 탑승 속도에 따라 세 시간 반에서 여섯 시간까지도 걸린다. 그만큼 오기 어려운 곳이기에, 요르단에 사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조차 좀처럼 발길을 옮기지 않는 지역이다. 외국인이 거의 없는 이 도시에 내가 산다는 건, 그 자체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누군가 이곳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준비할 것이 많아진다. 음식이며 과일, 차 한 잔까지도 타필라에서는 즉석에서 준비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학교 공과대 학장에게 미리 외부 방문자의 일정을 알리곤 했다. 혹시 모를 오해나 불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코이카의 여성 단원 한 ..

요르단 생활 2025.04.19

[요르단] 현지 사람에 대한 기대

낯선 땅,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요르단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가끔씩 마음속에서는 복잡한 감정들이 고개를 든다. 처음에는 그저 여행자의 시선으로 가볍게 넘겼던 일들이, 시간이 흐르며 점차 내게 깊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암만의 거리에서 나는 때때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현실과 마주친다. 택시를 탈 때나 물건을 살 때,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요금을 요구받고, 원하는 목적지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 내려질 때면 단순한 불쾌함을 넘어선 서운함이 밀려든다. 이곳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지만, 그 순간만큼은 철저히 ‘외부인’으로 느껴진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살았는데…"라는 생각은 오히려,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던..

요르단 생활 2025.04.19

[요르단] "씨니가 아니라 꾸리입니다"

타필라에서 한국을 알리기까지의 이야기 2010년 봄, 나는 요르단 남서쪽의 조용한 도시, 타필라에 도착했다.암만에서 차로 3시간 가까이 떨어진 이곳은, 이슬람 전통이 짙게 배어 있는 지역이자, 한국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한 작은 도시였다. 나는 그곳의 공과대학에서 토목 분야 실습을 지원하며 KOICA 봉사단원으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나는 외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학생들은 나를 볼 때마다 “씨니!(중국인)”를 외치거나, 지나가며 소곤소곤 “니하오”를 던지곤 했다. 어떤 이들은 ‘잭키찬’이라 부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웃어 넘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반복된 호칭이 마음에 작은 금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인이고, 내 조국..

요르단 생활 2025.04.18

[요르단] 다나, 요르단의 숨겨진 생명 이야기

내가 살고 있는 타필라에서 자동차로 30분만 달리면, 요르단에서 가장 넓은 자연국립공원이 펼쳐진다. 바로 ‘다나(Dana)’다. 사막 국가 요르단에서 보기 드물게 사계절이 뚜렷하고, 수십 종의 동식물들이 공존하는 이 특별한 공간은 내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깊은 인연과 추억이 스며 있는 곳이다. 나와 다나의 인연은 미국의 피스코(평화봉사단) 단원이었던 ‘콘’이라는 친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떠난 후에도, 나는 다나에서 다양한 일들을 함께하고, 또 이어가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지도를 만들고, 호텔을 위한 물건을 제작하고, 때로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서빙도 했다. 이곳은 어느새 내가 봉사활동지를 넘어 사랑하게 된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다나에는 여러 형태의 숙박 시설이 있다. 정부기관 RSCN에..

요르단 생활 2025.04.18

[요르단] 요르단의 오지 타필라

요르단 남부의 작은 도시, 타필라. 나는 이곳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한국 사람일 것이다. 크고 작은 골목길, 갓 수확한 과일과 채소를 파는 가게, 사람들의 웃음이 머무는 과자 가게 아저씨, 고기를 주문하면 장난부터 치는 청년이 있는 정육점, 그리고 유일하게 열쇠 복사가 가능한 곳까지 타필라는 내게 더 이상 낯선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고, 편안하며, 정감 있는 ‘우리 동네’다. 한국 사람으로서 나는 이곳 타필라에 유일하게, 그리고 최초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 작은 도시가 내게 남긴 것들을 생각하면, 가끔은 내가 역사의 작은 일부가 된 것만 같기도 하다. 타필라는 그리 화려한 도시가 아니다. 오래된 도시이지만 특별한 관광 명소나 유명 유적지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지금이나 구약..

요르단 생활 2025.04.18

[요르단] IBM, 그리고 인샤알라가 알려준 여유

요르단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곳의 낯선 문화와 삶의 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한 현지 주재 한국 건설사 직원이 들려준 이야기였다. 그는 중동 지역에서의 경험을 풀어놓으며 우리에게 두 가지 인상 깊은 말을 전했다. “중국의 만만디가 중동의 인샤알라 앞에서 울고 갔다”는 농담 같은 말과, ‘IBM’이라는 약어가 가진 특별한 의미였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나는 종종 ‘만만디’라는 말을 들었다. 이는 ‘천천히, 느긋하게’라는 뜻으로, 중국인들이 일상 속에서 여유를 즐기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만만디’도 중동의 인샤알라 앞에서는 한 수 접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만만디는 천천히 하더라도 결국 내가 해내겠다는 전제가 있는 말이다. 반면, 인샤알..

요르단 생활 2025.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