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요르단에서는 주 요르단 한국 대사관 주최로 한국 필름 페스티벌이 열린다. 한국을 알리기 위한 행사 중 하나로, 매년 4편 정도의 한국 영화가 상영되며 현지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함께 관람하는 장이 된다.
모든 영화는 영어와 아랍어 자막이 함께 제공되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관람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아랍 친구들과 함께 관람하며 자연스레 영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 중 하나는 영화 식객을 보고 난 후였다. 해산물을 주제로 한 요리 장면을 본 아랍 친구는 군침을 삼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다양한 해산물 요리는 정말 처음 봤어.” 대부분이 건조한 사막지대인 요르단에서는 해산물이 귀한 고급 음식으로 여겨지고, 실제로 요르단 내 항구 도시인 아카바 외에는 해산물 요리를 쉽게 접할 수 없다. 음식 하나만으로도 문화의 차이는 선명했다.
워낭소리를 본 뒤엔 또 다른 반응이 나왔다. 소와 사람이 감정적으로 교감한다는 설정이 다소 낯설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어떻게 동물과 마음이 통한다는 거지?”라는 질문은 그들에게는 낯선 감정선이었다.
또 7급 공무원에서 잠깐 아랍어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는 다들 크게 웃었다. 자신의 언어가 외국 영화에 등장하는 낯설면서도 반가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요르단에는 불교 사원이 없다.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 사회에서 절이라는 개념은 생소하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함께 보던 중, 친구가 사찰과 불교에 대해 물어보았고 나는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특히 불교에서 사람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해탈에 이른다는 개념은 유일신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상이었다.
영화를 보던 중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왜 저 여자는 떠나는 거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 되잖아.”
그 장면은 국경의 남쪽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에게 “당신의 첩이 되어서라도 함께하고 싶다”고 고백한 뒤, 다음날 조용히 떠나버리는 장면이었다. 일부다처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란 친구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 나라에서는 한 사람이 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야.”
그러자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사랑하는데 왜 함께하지 못하지? 우리는 그렇지 않은데… 저런 장면은 이상하게 느껴져.”
“옛날 한국에도 일부다처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그래, 한국도 그랬구나. 근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 마지막 질문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나 스스로도 그 질문의 답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단지 ‘다르다’고만 생각했던 문화가, 눈앞의 친구에겐 ‘당연함’이었고, 내가 답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그저 문화적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단지 멀리 떨어진 문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곁에서 내게 질문을 던지는 누군가의 삶의 방식이었다.
이곳의 영화 상영 방식도 나에겐 또 다른 충격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짧게 등장하는 정사 장면은 검은 화면에 사운드마저 차단된 채 상영되었다. 이곳에서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스킨십이나 신체 접촉 장면은 대부분 검은 화면으로 전환되거나 소리가 사라진 상태로 처리된다. 외국에서 수입한 잡지 속 노출이 심한 사진들은 검정색 또는 살색으로 덧칠된 뒤 발행된다.
한국에서도 예전엔 이런 검열이 있었다고 들었지만, 그 이야기가 현재진행형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어쩐지 낯설고도 신기했다. 처음엔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하나의 문화적 ‘틀’이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서로 다른 감상과 해석, 그리고 서로의 삶을 비춰보는 대화는 나에게 새로운 시선을 안겨주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유교적 가치와 교육 속에서 자란 나와, 요르단에서 자라고 무슬림 교육을 받아온 친구가 같은 장면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지형적 조건, 종교, 역사, 교육. 그것이 ‘일반적인 생각’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이 작은 필름 페스티벌을 통해, 단지 한국 문화를 알리는 자리를 넘어, 나 자신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문화는 틀릴 수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다름을 마주하고 질문을 주고받는 일이야말로, 문화 교류의 가장 소중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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