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생활

[요르단] 하리수 – 요르단 생활의 실질적인 동반자

anwarkim 2025. 4. 17. 04:13

 

요르단에 와서 ‘하리수’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한국 연예인 이름과 발음이 비슷해서 쉽게 외울 수 있었다. 뜻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하리수는 암만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도 많이 존재한다. 허드렛일 하기를 기피하는 아랍 사람들은 각 집마다 집을 관리해주는 사람을 고용한다. 마치 외국의 집사처럼 한 집을 전담해 관리하는 사람도 있고, 집안일을 돕는 일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집트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집트의 인건비와 물가는 요르단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을 해서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암만의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이집트인이다. 이집트, 특히 카이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 터전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 일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다. 중동 지역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성향을 가진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전, 요르단 사람들이 오히려 이라크로 가서 하리수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노동력을 수출하던 이들이 이제는 이집트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요르단 사람들에게 하리수가 하는 일을 시키면 절대 하지 않는다. 기다렸다가 하리수가 오면 다른 사람이 시킨 일조차 다시 하리수에게 시켜서 그 일을 하게 한다. 한국 지상사에서 일하시는 분이 사무실 책상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주변 현지 직원들에게 함께 옮기자고 부탁했더니, "자신은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라며 딱 잘라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무실에서도 이들은 차를 각자 타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하리수에게 차 심부름을 시킨다. 자신의 일과 하리수가 하는 일 사이에는 확실한 경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 교민 사회에서는 “하리수를 잘 만나야 이곳 생활이 편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하리수는 요르단 생활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요르단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몇몇 분들은 영어도 잘 못하고 아랍어만 사용하는 하리수와 소통하기 위해, 아랍어 실력을 기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기도 한다.

 

사회 기반 시설이 미약한 요르단에서는 집에서 사용하는 물이 지역마다 주 1회 관을 통해 공급된다. 이 물을 집에 있는 물탱크에 받아두고 사용해야 한다. 가스 또한 한국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가스 차량을 직접 불러서 교체해야 한다. 하리수는 물탱크를 확인하고, 물이 공급되기 전 물차를 불러 채워두는 일, 가스통을 미리 준비하고 필요할 때 즉시 교체하는 일을 맡는다. 여러 생활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다 보니, 조금 더 눈치 있고 부지런한 하리수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인 것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은 하리수에게 무언가를 시킬 때 조금 머뭇거리는 경향이 있다. 내가 예전에 살았던 집에는 하리수가 없었지만, 지금 거주하는 집에는 하리수가 있다. 나는 무엇을 부탁할 때 그들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곳에서 일하는 하리수는 조금 불성실한 자세로 일을 한다. 1층에 사는 주인 아저씨가 부르면 언제나 눈썹이 흩날리듯 달려가서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가 무엇을 부탁하면 듣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내일 하겠다”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정작 일 처리는 계속 미뤄진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그 하리수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고 일을 시키는 것인데, 오히려 내가 상전을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끔은 ‘과연 하리수를 어떻게 대하는 게 맞는 걸까’ 하는 고민에 빠지곤 한다. 이들의 생활과 태도, 그리고 나의 생각과 기대 사이에서 오는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다.